엘리엇 킴 작품방/구도시·금언

앎 -6(앎에서 깨달음으로)

imaginerNZ 2008. 2. 18. 03:08

 

앎 -6(앎에서 깨달음으로)

 
앎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생에 걸쳐 자신이 구축한 앎의 성채를 떠나 멀리서 바라보며
앎의 집인 마음이 원래 가난하고 소박했다는  삶의 사실성이다.
 
앎을 얻으려 함은
거지가 연명을 구걸하는 것과 흡사하다.
거지는 자신의 인생을 구해달라고 읍소하지 않는다.
때로 사무치는 삶의 각박함이 외려 소박함을 낳는다.
 
앎을 위해 삶을 사는 사람은
앎이 무우를 썰듯 무지를 베는 칼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앎의 날을 검도의 계획성으로 혹은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세계는 응하지 않으며 원래 있는 그대로 있다.
 
사람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무지(無知)가 얼마나 광대무변한지를 더욱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앎은 삶의 궁극적 진로가 아니다.
그러면 삶의 궁극적인 진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길은 먼 길이 아니라,
그대가 가는 길 바로 옆에 나 있다.
그 길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은
그대 마음의 마지막 한꺼풀에 달려 있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이루고 쌓아 온 모든 것들은
그것이 인류사에 어떤 위업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김없이 비우고 가야 하는 것들이다.
살아생전에 그것들을 남김없이 비울 수 없다고 여기는 집착심이
스스로 그대 삶의 목에 단 칼이며 손에 찬 수갑이요 발에 찬 족쇄다.   
 
살아 있는 동안에 모든 것을 차츰 차츰 비워 나아가라
다 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속심만이라도 우선 비우고
수행을 통해 심신의 소유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베풀라.
그러면 나머지도 점차 비우게 된다.
 
마음을 남김없이 비우려거든
죽음이 최종적으로 비우기 전에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부터 먼저 하나씩 마음에서 꺼내면 된다. 
남김없이 비우려 하지 않으면 깨달음의 도정에 오를 수 없다.
 
깨달음에서 깨달음으로  
말없이,
끊임없이,
한없이,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행로다.
(200712110610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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