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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의 시조는 동이족이다.(3)

imaginerNZ 2007. 9. 29. 06:17

중국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3)

고시씨와 염제신농

태호복희에 이어 등장한 염제신농 역시 그 뿌리를 배달국에 두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태백일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사람중에 소전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안부련] 한웅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들어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신농] 은 여러 가지 풀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그는 뒤에 열산으로 옮겨갔다.]

위에서 말한 웅씨는 이미 배달국에 귀속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 이라는 사람이 염제신농의 부친인 것이다.

그 소전은 배달국의 8대 [안부련] 한웅의 명으로 강수라는 곳에서 병사를 감독하는 직책에 있었다.

[사기] 에 의하면 염제신농은 성이 강 씨 인데, 이는 신농이 강수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전의 아들 신농이 처음 정착한 곳도 복희씨가 도읍했다는 하남성의[진] 이며,

후에 산동성으로 옮겼다가 다시 열산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계속해서 [태백일사] 신시본기의 기록을 보자.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진의 아들이며 소호와 함께 고시씨 방계 지류이다]

신농의 아버지 소전은 소호금천과 함께 배달국 고시씨의 방계지류 라고 했는데,

고시씨는 배달국에서 대대로 우가의 직책에 있으면서 곡식, 즉 농사를 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은 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이 이 고시씨의 먼 후손이라는 것이다.

소전이 고시씨의 방계지류라면 결국 염제신농 역시 고시씨의 집안이 된다.

여기서 다시 농사와 곡식을 관장하고 있던 고시씨의 집안 내력과 신농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규원사화]의 기록을 보자.

[한웅 천왕이 고시씨에게 명하여 먹고 사는 것을 관장하게 하니

고시씨는 짐승을 잡아서 기르는 법과 농사짓는법, 그리고 불씨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다음은 태백일사의 기록이다.

[ 진역유기 신시기에 이르기를, 한웅 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성되고

만물이 각기 자리를 갖춤을 보시고는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살리는 임무를 담당하게하니

이를 주곡이라 한다.]

환웅이 처음 태백산 정상으로 내려와 신시를 열고 다섯가지 일과 360 사를 주관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곡식, 질병, 생명, 형벌, 선악, 등을 5 사라고 하며, 이러한 5사를 관장하고 있던

다섯가지 관직을 5 가라고 했다.
5 가는 우가, 마가, 구가, 저가, 양가,로 보두 가축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에서 농사의 시조라는 염제신농을 [인신우수] 라하여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기] 삼황본기의 기록을 보자.

[염제는 인신우수의 형상으로 강수 근처에서 성장했으므로 강씨라 했다.]

여기서 신농이 소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뿌리가 배달국의 [우가],

즉 고시씨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대목임을 알 수 있고,

아버지 소전을 따라 중원으로 들어가 농사를 가르치고 의약을 만들어

의농의 시조로 불리게 된 것이다.

신농이 대대로 [우가[라는 직책에 있었던 배달국 고시씨의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기]에서 그를 가리켜 인신우수라 한 것이며,

그배경에는 배달국의 역사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증 한단고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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