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휴애거사 범장 : 휴애거사는 범장의 아호이다. 일명 범세동이다.
[북부여기상 하] 와 함께 [가섭원부여기]가 현존하며, [동방연원록]을 썻다고도 알려져 있다.
또 목은 이색과 같이 [천부경] 주해서를 쓴 것이 세상에 전한다고 한다.
(2) 천왕랑 : 천왕랑을 자칭한 임금은 해모수 뿐이다.
(3)난변 : 어느 곳에 있는 지명인지 알 수없다. 부여가 건국된땅을 몽고의 내륙이라 할때
웅심산. 난변도 모두 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4)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 : 오우의 관이라 했으니 까마귀 날개 장식을 단 관인데,
저 고구려의 절풍 모습의 장식 달린 면류관을 뜻하리라.
(5) 오룡의 수레 : 이는 예로부터 천자의 수레를 가리킨다.
(6) 연호의 법 : 요즘말로 호구 조사법이다. 취사하는 인구의 수를 조사하는말.
(7) 공양태모의 법 : 공양이란 임금이 현자를 부양하는 예절을 뜻하며 태모는 태교를 뜻함이니
현자를 아끼며 태아의 교육까지 생각한 법이다.
(8)백악산 아사달 : 사서는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저 고조선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평양 도읍 시대.
백악산 아사달시대. 장당경시대. 아사달 산신시대. 로 구분된다.
이 백악산 아사달은 그 두 번째 도읍지를 뜻한다.
(9) 번조선의 왕 기준 : 단제가 말한대로 기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의 왕이 된 것이 아니라
기자의 먼후손 중에서 번조선의 왕이 된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기준이 바로 그러한 왕이었던 듯 하다.
그러면 이때 [모수리 단군] 은 번조선의 상국으로서 기준의 상왕 이었고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기준은 [모수리 단군] 의 제후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2 세단군 모수리.
1) 중마한 ~~ 월지국을 중마한이라 한다는 설은 이것이 처음인 듯.
2) 변. 진한 ~~ 진. 변. 마. 셋 한 가운데 마한이 우두머리 격이고
변한. 진한이 그 제후국인 것처럼 기술 하였으나,
단재는 진(단재는 신 이라 읽음) 이 상국이요,
번(혹은 변) 막(혹은 말. 마) 이 하국이라 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3) 연타발을 평양에 파견하여 ~~ 연타발의 전거는 없으나
그가 쌓은 평양성은 중국 요녕성 해남의 평양을 말하는 것이다.
뒤에 곧바로 [평양을 해남도에곳하게 함] 이란 기록이 뒤따른다.
평안남도 평양을 해남도에 속한다고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해남은 지금도 지도상에 요동만의 해안도시로 그려져 있다.
확인할 필요가 있다.
3세 단군 고해사
1) 낙랑왕 최숭 ~~ 낙랑군과 낙랑국은 이름. 성격. 지역등 모두가 다른 것이다.
아직까지는 낙랑국 왕 최씨를 한. 중. 어느 민족에 속하는 인물인지 밝혀놓은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단재는 낙랑군이나 낙랑국을 조선의 평양으로 비정함으로써 그의 사학의 광채에 한 점의 티를 남겼다. 왜 그런가하면 낙랑군 따위는 본디 설치된적이 없었고, 다만 하북성.
북경 일대가 낙랑군이라고 후위 때까지 중국측에서 호칭했던 기록만이 전할뿐이고,
여기 보이는 낙랑국은 만주의 요동반도 서해안의 해성 이 낙랑국에 인접해 있었음이
고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재의 낙랑 평양설은 오랫동안 정통 사학계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게 했던 불행한 학설이다.
단재가 정통사학에서 차지하고있는 비중이 컸기때문에 이낙랑설의 영향은 실로 컷던 것이다
2) 남녀성 ~~ 하북성 창현근처에 있었거나 아니면 요녕성 해성 근처일 것이다.
4 세 단군 고우루.
1) 서압록 ~~ 지금의 요하를 압록 혹은 아리수, 구려하로 불리웠으니
서압록은 지금의 몽고 지방일 것이다.
2)고구려후 ~~ 중국의 제후국인 고구려후가 아니라 북부여의 고구려후 였음을 비로소 발견한다.
고진은 전거가 없다.
3) 평나 ~~ 우거를 멸한 장소라면, 다른 사서에선 모두 왕험성, 또는 험독 이라했는데,
어째서 여기선 평나라 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평나의 전거는 찾을길 없으니 더욱 안타깝다.
왕험성은 현재의 하북성 산해관 남쪽의 창려 지방일 것이다.
아마 평나도 그 근처 지명일지도 모르겠다.
4) 4 군 ~~ 사마천의 사기 115 권 조선열전이 한사군 전쟁기록의 원천인데,
그 원전속에 한사군 설치의 기록이 전무하여사군의 이름조차 실려있지 않다.
그런데 종래 한사군의 위치를 놓고 여기다 저기다 위치 논쟁을 벌려온지 수백년이 되었으니
실로 태어나지도 않은어린애를 놓고 이름짓는 다툼을 벌려온 셈이다.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은 우거를 죽인것도 한무제 유철의 군대가 아니고
우거의 통치를 받던 원주민 조선족의 최 에의해서 살해되었고,
우거 다음의 반항자 성기를 죽인것도 조선족에 의해서였다.
당시 위만. 성기 일족의 괴뢰 밑에 학정을 겪었던 번조선 일족의 반항심이나
의분은 실로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사군 전쟁은 한나라 섭하 라는 요동도위가 조선의 비왕 장을 자객을 살해한 보복으로
조선군의 습격에 의해 살해된 것이 그 발단이다.
하지만 사실은 곪고 곪았던 조선족의 불만 불평이 터져서 정변을 일으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우거. 성기를 살해하고 우거 정권을 타도하며 위만 조선의 땅이 혁명 주모자 네사람,
참. 협. 음. 최. 에 의해서 4 군으로 갈라져
[참의 홰청. 협의 평주. 음의 추저. 최의 날양] 으로 분립한것이다.
사마천도[대정조선위사군] 이라적고 정작 사군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며
겨우 위의 4군을 설명하였으니, 한사군의 선입관을 갖지않은 사람은 당연히 홰청. 평주.
추저. 날양을 4 군으로 간주하지 않을수 없다.
소위 낙랑. 현도. 진번. 임둔. 이라는 4군은 원문에 나오지도 않은 도깨비 유령 사군인 것이다
이 한사군의 유령 4 군을 학계에서 제일먼저 지적 고발한 석학은 서울대학교의 [박시인]
박사이다.
실로 한사군학설의 허무한 학설은 실로 미증유의 것이라고 할만하다.
박시인 박사의 지적처럼, 한무제는 전쟁의 실패를 분풀이 하기 위하여
전쟁에 참가했던 육군 사령관 순체. 해군사령관 양복. 무제의 사신인 위산과 공손수.
네사람을 모두 능지처참에 해당하는 기시 라는 최악의 사형으로써
시체마저 발기발기 찢어서 죽였던 것이다.
한무제가 이토록 패전을 뼈아프게 여겼다면 이긴자는 조선족. 특히 번조선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사학은 조선의 패전만을 들먹이는가?
따라서 여기 [한의 유철이 사군을 설치하려고 운운] 하는 기록은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던 이제 한국 사학계는 한사군의 망령에서 해방될때다.
5) 왕은 이땅에서 옮겨가시오 ~~ 이 말은 종래 해모수가 아란불에게 한 말로 삼국사기 등에
소개된 것이다.
6) 가섭원 부여기 ~~ 가섭원의 전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 동명성왕 조 에도 있다.
가섭원이 어느곳이었는지 그것을 밝힌 사서는 일찍이 없었다.
다만 일본인들이 함경도 동해안을 지적해 왔을뿐이다.
문제의 저 가지마도 [유사] 에 동부여왕 금와가 도읍한 곳이라 중언부언 하였다.
그러나 주해자의 추단으론 요동반도의 남쪽 대련~여순의 땅이 아니었을까 비정해본다.
해성에서 보면 그쪽이 동부여의 호칭을 받기에 적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5 세단군 고두막
1) 북부여 ~~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200 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함은 사학의 상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일부에선 북부여의 건국을 실질적인 고구려의 연대로 간주하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동명과 주몽은 한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김부식은 이를 한 사람으로 삼국사기에
묘사했고, 곧 [시조는 동명성왕이요, 성은 고씨 휘는 주몽이다] 라고 했다.
한편 묘하게도 동명의 부여 건국 설화와 주몽의 고구려 건국 설화가 똑같다.
즉 동명이 고리국으로부터 탈출 비류수 물고기의 도움으로 강을 건넜던 과정이,
주몽이 북부여 탈출- 분능수- 물고기의 도움으로 도하의 과정이 똑같다.
북부여나 비류수가 현재 내몽고의 땅 부이르 호수 및 바이칼 호수 동쪽이라는 몽고 과학원
슈미야바타르 교수의 학설은 북부여기 및 고구려본기 전체에 걸쳐 참고 되어야 할 대목이다
2) 졸본 ~~ 종래엔 광개토대왕 비문의 홀본과 같은 땅이요, 지금의 혼강 유역의 한인 지방이라고
했으나, 전기한 슈미야바타르의 주장에 따르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는 없고,
부이르 호수 근처의 어느 곳, 바로 지금의 북만주나 동몽고의 땅으로 비정된다.
3) 서안평 ~~ 본서의 대진국 본기는 다음같이 서안평을 설명한다.
서경은 압록보다 본래 고리국이며 지금의 임황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이다.
고로 구지의 안민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이다. 임황은 뒤에 요의 상경 임황부가
되었다.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
그런데 이를 의주의 대안. 만주의 압록강변. 이라고 했던 종래의 반도사관은 도대체 어떻게 된것인지?
미천왕의 서안평 정벌도 이제는 새로 해석해야 될 것이다.
4)고리국 ~~ 슈미야바타르는 고리국의 위치를 바이칼 호수 동쪽의 몽고 내부에 있다고 발표했다.
참고할만하다.
6 세 단군 고무서.
1) 협보 ~~ 주몽의 협력자, 뒷날 일본에 건너가 다파라국을 세웠다.
고구려본기는 다음과 같이적고 있다.
[ 이보다 앞서 협보는 남 한으로 도망하여 마한의 산중에서 살았는데 그를 따라온 사람들이
100 여 가 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속하여 흉년이 들므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협보가 장혁을 알게되어 무리를 설득하여 식랼을 준비해 가지고 배로 패수를 다라 아래로 해포를 지나 곧바로 구야한국, 바로 가라해의 북안에 으르러 몇 달을 살다가 아소산으로 이사하였다.
이것이 곧 다파라국 의 시조다. 후에 임나와 함하여 다스렸다.]
본서 고구려국 본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단고기. 임승국님의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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