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시론

한국시는 묘함을 추구하고 있다

imaginerNZ 2007. 9. 14. 17:38

한국시는 '묘'함을 추구하고 있다

-엘리엇 킴

 

 

현재까지의 한국시는 대체로 '묘함'을 추구하고 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묘함'은 원대함이나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사소할 수도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묘함'은 '묘함'끼리 매우 잘 호응하며

그러한 '묘함'이 시작태도의 기본으로

동시대를 장악하려는 듯

시의 전반적인 풍조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현묘, 신묘, 오묘, 기묘, 세묘해야만 시가 된다는 식으로 하는 시작과 비평의 풍토는

거의 유습적인 형해에 가깝다.

동양에서 온고이지신은 마모될 만큼 마모되었으니

온고이지신을 온고이지신해야 새로이 진의가 통할 듯하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적으로 아기자기한 각종의 '묘함'은

심오하거나 숭고하거나 장대하지 않다.

 

더 나아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에도

'묘함'은  궁극적인 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문예는

모든 경계를 넘어선다.

진정성 있고 독창적인 문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전무후무한 창조적 정신성의 소산이며

궁극적으로는 진선미의 화신이다.

 

문예적 진인은

태어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상황으로부터

이미 왕양히 자유롭다.

 

그러니

어떤 그대가 문예를 제대로 하려거든

한국어와 한국문단에,

누항(陋巷)에만,

혼을 슬리듯이 머무르지 말고

국내외로 여행을 하며 명상하고 구도하라,

그러면 원래 있던 그대로 새로이 열리리니.

(200709140431 대치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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