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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하여(On Truth)

imaginerNZ 2007. 5. 2. 05:12

진리에 대하여(On Truth)


  진리란 사람들이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곳에 세우는 표지석이나 말뚝이다.

참진리의 표지가 세워져야 할 세계의 배꼽(An omphalos of the world)에는 그러나 지상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산정처럼 아무런 표식이나 기념물도 없다. 진리는 우리가 추구하게 되는 절대적인 기준일 뿐이어서 진리 속에는 아무런 내용도 담겨 있지 않다. 진리의 속성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다만 진리를 풍선화하여 거기에 저마다 바람을 불어넣으려 한다. 그것은 ‘나름대로 진리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사람들이 진리의 풍선을 나름대로 불어대면 그 형상은 제각각이면서도, 결국 둥그스름한 구체(ball-shape)를 형성한다. 그것은 ‘진리의 불확정성을 영역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영역에서 그 중앙부위에 해당하는 진리추구의 부위는 일정한 정도의 확산성을 지닌 구체화((球體化)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둥그스레한 영역을 모방하여 외부세계에 체현하려는 지적인 욕구는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적 진화의 중추적인 특성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생리학적인 욕구만족의 문제이다.

  진리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며 우리가 진리를 밝혀 말할 때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우리가 진리를 말할 때 그것은 내적으로는 정신적 허기의 욕구충족과 외적으로는 진리의 효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효용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 이유는 의외로 소박하다. 모든 이론과 실천에는 지향적 기준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영역의 진리들은 지정된 영역의 기준들이다. 이러한 소영역의 진리들은 세계의 배꼽(An omphalos of the world)으로 향하는 이정표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정표를 모아 놓고 판단을 내려도 세계의 궁극적이면서 유일한 진리를 파악하지는 못한다. 우주적 진리는 하나의 척도이면서 모든 진리이며 공간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따져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한 인간의 뇌역에는 세계의 중심인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그러한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중심 지향성이 내재되어 있다. 한 가지 진실은 인간이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제각기 나름대로 진리를 측정하고자 하는 잣대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성이다. 진리추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 점만이 유일하면서 확고한 '인간적 진리'라는 점이다.  인간이 절대기준으로 찾고자 하는 진리는 포괄적 유일체, 그 자체이며 거기에서 발현되어 있는 시공태이다. 따라서 물리적 진리는 하나이면서 전부인 우주 그 자체(the universe itself)이며 정신적 진리는 거기에 고루 편재하는 ‘그리움(Grium)'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자 하는 이성적 진리는 제 가슴 속에서 더운 피를 펌프질하는 심장, 즉 감성적 진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성적 진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감성을 미이라화 하는 것이다. 맥동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 미이라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진리다‘라고 설파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인간이 지각적인 체험, 혹은 지각을 최대한 확장시켜 주는 도구의 도움을 받는 체험을 토대로 우주를 파악하는 한,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는 감성적 진리인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객체로서의 진리는 인간의 생리적 두뇌의 자족성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적인, 일종의 자폐적인 증상이다. 인간은 우주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결국, 우리가 하나이면서 전체인 객관적인 실체에 이루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주의 메아리(an echo of the universe)'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메아리가 되는 유일한 감성은 사랑의 감성에서 태동하는 ‘그리움’이라 할 수밖에 없으리라.

[04:48am, 12/28(Wed),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