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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론-1(전체로 완성된 하나의 그 무엇)-수정

imaginerNZ 2011. 8. 24. 13:45

예술론-1(전체로 완성된 하나의 그 무엇)-수정

 

그림은 전체로 완성된 하나의 그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림의 궁극적 배경은

하이얗게 숨진 빛깔이거나 저홀로 깊어가는 어둠이 아니라

생사의 경계에 드리워진 하나의 투명막이라 할 수 있다

 

구도와 명암과 색채의 조화

선과선,면과선,면과면의 조화

여백과 가필, 가필과 가필, 여백과 여백의 조화

물질과 물질, 물질과 정신, 정신과 정신의 조화 등은

완성적 결과로서의 조화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시공적 응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효과적 수단이다

 

숱한 평범에 젖은 화가들과 이미 시대를 벗어난 위대한 화가의 차이는

순수직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순수직관은 원적한 통찰을 낳고

이러한 통찰은 '어디에 내어 걸어도 무엇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진경일체화(眞境一體畵)'를 낳는다

 

이 세상에 거의 모든 그림들은 

화폭에 흠뻑 배어 찬연히 혹은 고요히 머무르거나

화폭을 한마리 학처럼 유유히 넘나들고 있거나

화폭에서 화폭을 넘어선 듯 은은하거나

화폭을 잊어 홀로 망연한 듯하거나

화폭을 떠나 아득히 멀리 가고 있는 듯하나

진정한 작품은

마치 '원래부터 그러했다'는 듯이 이미 화폭조차 없는 진경(眞境) 그 자체만 존재할 뿐

거기에는 화가도 붓도 화폭도 심지어 그림 그 자체도 없다

타자의 감상은 물론 생사의 어떤 환경도 없이 오직 그 무엇만이 덩그라니 있을 뿐이다 

 

삶이 원체 그러하듯이

예술에는 어떤 종류의 삶이나 기법보다 직관이 선현(先賢)하고 있다

유일한 직관 없이 유일한 통찰은 없다

유일한 직관 속에 유일한 통찰을 하고자 한다면

만일 그대가 화가가 되고자 한다면

매사에 선후가 있는 법이니

'어떤 기법의 그림자 경지를 예열'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구도행(求道行)하기 바란다

 

철없는 천부적 분출의 아름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쓰디쓴 쓸개에 고결한 하나의 영혼이 담겨 있으면 그것이 진정한 그림이다

생사 너머 인고(忍苦)에 차고 기움도 남김없이 지난 그림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상찬해 온 독보적인 것들보다 극적이리만큼 훨씬 더 희소하다

진정한 예술성은

대중정서나 예술비평에 의한 비교우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재능은 대중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일반대중의 우직함과 상류계층의 세련된 격식의 눈매에는

도전과 기행으로 삶을 채우려하는 일탈과 반골의 역외자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진정한 재능의 운명이다

세상과 털끝만큼이라도 타협하는 순간부터

재능의 귀퉁이는 서서히 부서져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고

세상사의 밑바닥에 쌓여 있는 부와 권력과 명예의 낙엽층이 생성하는 

부식토에 일정한 가루성분으로 남는다

 

어떤 진정한 예술혼이 유명세를 앞두고 죽는다는 것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의 아이러니는 아니다

작품에 얽힌 슬픈 뒷이야기가 작품의 가치에 반영되는 것은

그것을 감상하거나 구입한 사람의 정신수준의 문제에 불과하다

 

진정 아름답고 고결한 작품의 온전한 감상자는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다

세한도를 보라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201108231411 엘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