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관한 글-2(Writing on Writing -2)
자연의 글은 저절로 쓰여진다. 글은 부지불식간에 쓰여진다. 어떤 의지나 의도나 계획이나 지식이 전제되지 않거나, 그런 것들이 전제된다고 해도 도구에 불과하다. 글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아나오거나 아니면 삶에 사랑에 그리움으로 저홀로 추는 춤이다. 그것은 녹아 내린 열정과 무상한 화평이 어우러져 극적인 순간에 달하는 온 세상 춤이다.
세상살이의 압력과 글의 압력에서 동시에 벗어나자. 글은 내키면 쓰고 내키지 않으면 그만이며 우주자연과 비로소 하나가 될 때 참글은 절로 이룬다. 그대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자연에 드는 영원한 순간에 글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이 배제된 상황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연주하듯, 그림을 그리듯 끊기는 듯 이어지는 듯 어우러지며 마침내 충만하면서도 비어 있어 거기에 더하거나 덜한 것은 이미 태초부터 없다.
재능은 타고나면서부터 자신의 입장과 소속에 대해 알지 못하며 어떤 것도 명료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외부적 상황에 기인하는 사소한 회의에 빠진 채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이 아무런 의지나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우주자연에 동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혹은 정도와 개성을 달리하며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그대 이전에 쓴 모든 책과 글을 한 장도 남김없이 버리고 그대가 썼던 글도 마저 다 버리고 그대가 들었거나 들고 싶어하는 붓도 까맣게 잊자. 그럴 때마다 마음이 화평해지기를 바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망필(忘筆)의 숱한 나날에 고요히 들어 결과적으로 기다림의 일생을 소요했다해도 그는 대자연의 침묵의 관점에서 소리없이 피어나는 꽃으로 온전한 영혼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대가 세상살이를 겪으며 많이 아파하고 외괴로워하다 문득 그대의 모습에 스며들어 있는 세월의 모습을 읽고 삶의 현상이 우주자연에 하나로 어우러짐을 느끼게 될 때까지 다만 무위한 마음으로 살면 된다.
글을 쓰거나 말거나의 문제는 글의 문제가 아니라 개체인 그대의 문제에 불과하다. 무엇을 쓸 것인가? 혹은 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여러가지 글에 관한 자문(自問)에 고민을 하는 이는 진정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거나 어떤 재능이 있다해도 예(藝)를 이루기 힘들다.
예(藝)는 모든 상황에 우선하고 삶의 현실은 결국 차선이다. (200807050954 엘리엇 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