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꾸준히 축차적으로 건너갔다.
많은 일본인들은 마음 속에 원일본인(原日本人)이라는 잠칭적인 허상을 만들어 놓고 그와 구분하여 역사시대 이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아전인수식 명칭을 붙여 부르고 있다. 기괴한 일이다. 일본인들은 거의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해인(渡海人)의 후손이다. 홋카이도와 동북지방 일부에 거주하던 아이누족은 비주류로 연해주 지역과 사할린에 거주하던 북방 몽골로이드계 주민들이 홋카이도에 표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 후기와 역사시대에 들어서 일본열도의 큐슈, 혼슈의 남부와 중부, 시코쿠 등 경작에 적합한 온난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한반도의 도해인들에 의해 야만인 취급을 받아서 도해인들과의 혼혈은 그다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일본어는 고대한어에서 갈려나온 자손언어에 해당한다.
선사시대에 일본어의 조상어인 반도한어가 있었고 거기에서 갈려 나와 일본의 열도한어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현대일본인들은 어원을 모르면서 그들이 현재 쓰고 있는 말이 고대 한국어에 가까우며 한국어로만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특히 제주도 사투리의 원형인 탐라어는 반도한어(한국어)와 열도한어(일본어)의 다리역할을 하는 중간적 언어로 이 두 언어간의 비밀에 싸인 채 잃어버린 교량을 찾는데 가장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제주도 사투리의 어감을 지닌 사람인 필자가 어느 일본영화를 시청했을 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자막을 보지 않고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간사이 지역의 사투리였는데, 그 어투는 낯선 언어가 아니라 매우 친근하게 들렸다. 특히 북큐슈우, 간사이 지역(나라, 교토, 오사카, 등등)의 사투리는 오랜 이격의 세월을 건너 확실히 감이 왔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구사하는 사투리가 몇 천년 이전의 아주 오래된 옛날투의 말이었으며 문명화된 점잖은 말이 아니라 순박하고 직정적이면서 비추상적, 구체적이며 요즘말로 하면 매우 촌스러웠다는 점이다. 일본어는 마치 신석기 시대나 고대쯤에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열도에 흩어져 살던 시골어른과 아이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투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아득한 체험이었다.
3. 고대의 고구려와 삼한시대(마한, 진한, 변한)에 대해 일본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은 몇 가지 공통된 모순이 존재한다.
첫째로, 많은 일본의 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마치 일본인이 원래부터 한반도인의 후손이 아닌 것처럼 가정하고 그점을 암암리에 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역사 축소조작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선이다.
둘째로, 일본에 세워진 도해인 정권은 잃어버린 혹은 두고온 고향땅에 대한 향수가 짙었고 한반도에 남아있던 혈연들과의 유대도 매우 밀접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친척간에 상호교류가 잦았을 것이다. 그점이 와전되어 임나일본부설과 분묘형태를 근거로 한 마한지배설 등등이 일본사학계에서 주장되고 일반인에게도 교과교육을 통해 전파시키고 있다. 일본인들이 선진철기문화를 이수받고 있던 가야와 동맹을 맺었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본인들이 신라와 백제의 위협에 시달리던 가야왕실에서 시종하며 때로 일부 군사를 파병하여 가야에 주둔했던 것은 동맹관계였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철기라는 보물의 혜택을 주고 있던 선진 철기문명의 가야를 일본이 정벌하여 통치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만일 그 당시에 일본이들이 가야를 침공했다 치자. 철기문화를 꽃피우고 있던 가야의 여러 국가연합체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가야에서 철제무기를 수입하고 있던 일본이 정복욕에서 가야를 침공하여 지배할만큼의 철제무기를 확보하고 있었고 그만큼 강성했을까?
삼국시대의 기록을 보더라도 일본인들은 신라의 해안지역을 불시 기습상륙하는 작전을 주로 썼기 때문에 신라로서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왜구들의 치고 빠지는 작전에는 신라의 조정이나 군대가 즉각적으로 토벌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력군이 결집하여 올 때까지 각 성별로 농성작전을 썼다. 그 당시에 해안으로 침략하여 노략질하기는 매우 쉬웠다. 그것은 무기로 공짜 추수를 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용이했고 그러한 체험의 효과가 대대로 뇌리에 각인되어 역사기간 동안 내내 집중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중국의 광범위한 해안지역 각처에서 노략질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열도의 태풍과 일기불순에 의한 기근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은 노략질로 내몰렸을 것이다.
셋째로, 일본인들은 조상의 혈류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원일본인으로 가정한 조상의 남방계 도래설, 북방계 도래설 등으로 신비화, 모호화 한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조상신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역사적 진실이 눈앞에서 확인되는 상황을 가능한 회피하려는 집단심리에 빠져 있다. 일본의 지배계층의 대부분은 한반도의 패권다툼에서 패한 이주민의 후손들이다. 그들의 핏속에 그 원한이 대대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무시하려는 태도도 아마 거기에서 부분적으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일본인들은 아직도 심리적인 구원에 맺혀있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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