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당신은 정말 수선화 같습니다.
우리 e-mail 자주 나누죠.
근데 아까 낮에 통화할 때 당신 얘기 듣고
그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래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
실체의 그림자가 항상 뒤를 쫓는,
화려하고 변덕스러운 할리우드 스타들과 닮은 꼴 생활을 할지,
아님,
자신의 그림자까지 사랑할 줄 아는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의 품 안에서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느긋이 관조할 수 있는 삶을 살지,
그 결정은 그대의 몫입니다.
거울처럼 나는 당신의 역행동화일테고.
사람의 마음은 빙산과 같아요.
눈부신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빙산의 일각은 삶의 활성부분이어서
바닷공기의 내음도 맡을 수 있고
이따금 물새 몇 마리도 접하고 바다코끼리나 물개도 받아들이는 노출부이지요.
수면 아래 잠긴 빙산의 대부분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다만 떠받혀 주고
그 드러난 부위가 공기와 바람과 햇살을 받고
이런 저런 생명체를 받아 쉬게 할 수도 있지 않슴니까?
자신의 드러난 일각이 모든 현상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 빙산의 일각이 녹아 사라지지 않게 해 주는 것,
즉 존재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 수면에 잠겨 있는 부분을 삶의 심성,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는 온갖 현상에 구애받지 않는 삶의 뿌리,
현상에 침해되지 않는 ‘순수의 뿌리’라고 이름 짓고 싶습니다.
그것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가장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진짜 빙산이 되진 말고요.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되었죠?
그 만남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사랑하는 마음에서
당신에게 아래의 글 몇 편을 드립니다.
바람
남과 여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빈 마음을 채워주는 분위기와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람이 이는 곳을 지향하나 바람에 실려 있어
결국 명확한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상 없는 지향인 그리움, 그 등불을 마음에 피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自古의 친구를 벗하여 귀 기울여 듣고
인생과 예술을 논하라.
그러면 인생에 있어 참된 일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아가 숭고한 아름다움에 도달하여 거기 영원토록 머물게 되리라.
(4:09pm 07 Dec, 2001 : cafe 'SAY' in Bundang)
행복의 삼각형(A Triangle of Happiness)
사람으로 태어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첫 행복이다.
어느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봉우리의 행복이다.
한 마리 외로운 학처럼 죽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의 세계를 떠나는 행복이다.
[05:49AM, 7/05(Sat), 2003]
∑. TRANSLATION
A Triangle of Happiness
Born as a human,
to live and speak,
it is the first happiness.
To love some one,
it is a peak of happiness.
To die like a lonely crane,
it is a happiness to leave happiness itself.
[05:49AM, 7/05(Sat), 2003]
수선화거울(A Mirror of A Daffodil)
-이 글을 쓰고 난 후에 알게 된 너에게 헌정한다.
나의 수선화거울.
마냥 바라보면 하나가 되고
만약 깨어지면
나 역시 깨지는
나의 수선화거울.
[1:00am, 4/03(Thr), 2003]
사소함에 대하여
우주자연의 대척점에서
사소함은 사소함만을 낳는다.
사소함은 자연의 피임제이어
그 이외의 어떤 것도 낳지 못한다.
우주자연의 차원에서
모든 인간행위의 결과는
사소함이라.
[12:19am, 3/11(Tue), 2003]
영혼의 머리칼(Spiritual Hair)
-이미 쓰인 이 글의 주인인 너에게 헌정한다
우연의 눈길이 닿는
네 청금빛 머리결 숱숱이
난숙한 세월의 손목이 빗는
네 은가을빛 머리결 칼칼이
주인 몰래 생경(生硬)히 뻗어 가는
네 영혼의 검은 머리타래 올올이
[03:06am, 3/19(Wed),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