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궁극적인 창조성에 대하여
[On Ultimate Human Creativity]
-엘리엇 킴
인간의 진정한 창조성은,
무의식의 바다를 선험적으로 두루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한다.
명멸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모르스 부호로 '경험은 선험과 예지를 각성시켜 준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움'에 대해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점에서 꿈은 무의식의 바다 깊이 헤던 심해어가
깊디깊은 무의식의 해수면 위로 잠깐 고개를 내미는 현상이다.
무의식에 잠겨 있는 꿈에서 신화와 전설이 태어났고 신화와 전설에서 예술과 문학이 태어났으면서도 꿈은 인류정신의 저변인 무의식 속에 영원한 불사조로 살아 있으면서 이따금 그리움의 나래를 펴 창공을 헤다 다시 저만의 무게로 내려 앉는다.
생명의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명확히 구분되는 시간성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에 지속되기도 하고 현재를 지나 미래로 뻗어갈 수도 있으며 미래가 현재에 들어오기도 하며 미래가 이미 일어났던 과거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향후의 인류사에서는 인류의 거대한 꿈이 무의식의 수면 위로 잠깐씩 개별적인 고개를 내미는 현상은 문예사의 주류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단속적인 수면부상은 지금까지 발생했던 과거의 역사에 속할 것이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미래의 역사세계에서는 예술과 문학과 과학의 모든 매체가 융합된 하나의 문화예술의 덩어리, 즉 ‘종합문예’라는 거대한 덩어리로 인간의 정신사가 주류화 될 것이다.
전위예술은 반과거적이어 반발적이나 장르 파괴적인 자유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종합문예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종합문예를 지향하고 있는 인류의 정신사에 최초의 전면적인 충격요법을 시행해 문화예술의 모든 부문의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구분과 경계와 타성과 고정관념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종합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영화는 종합문예의 초기 예술형태이다. 기타 문학과 예술분야에서도 긍정적이거나 적극적인 제휴와 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최근에 영상과 음향과 미술과 어문과 인간의 행위와 배경 및 사물이 각각의 장르를 뛰어넘어 두루 함께 혹은 부분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개별 장르들은 매체와 표현면에서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명맥을 나름대로 이어갈 것이다. 동시에 개별 장르들은 그 고유성 안에 머물면서 다른 장르의 특성을 최대한 유입시키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다양화하고 강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시대까지 음악 이외의 예술장르들은 공간주도적이어 시간성의 도입이 요구된다. 과거의 문예는 공간주도적이었다. 즉 바꿔말하면, 현대 이전 모든 과거시대의 과학은 공간주도적이었다. 과학발전이 초가속화, 초정밀화하면서 공간을 기본바탕으로 시간의 실연에 대한 연구가 인간활동의 전분야(human praxis)에 투영되거나 반영되고 있다.
우주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간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공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생성의 원리로 실재한다. 즉 '시간은 공간의 숨결이다.' 시간 없는 공간은 없으나 공간 없는 시간은 하나의 원리로 여존할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공간과 시간의 결합은 돌이킬 수 없는 경향이다. 실시간(real time)이란 말이 생긴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연구영역은 '공간을 온갖 종류의 시간성에 투입하는 순간을 다투는 연구'와 '우주의 시간성인 순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식의 연구와 개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중에 가장 궁극적인 기초학문은 쌍방향의 물리학 분야(천체물리학과 미세물리학)이다. 어쨌든, 인류의 최종적인 연구대상은 공간면에서 '우주물리학'이며 시간면에서는 우주의 궁극적인 시간성인 '순간과 그 간섭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동시다중다발적인 '종합문예'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경향성과 비중은 고유한 개별장르의 단선성을 사회적으로 압도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 인간의 의식과 감수성은 장르 협동적이며 종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종합문예'는 [과학화 된 ’전설‘이자 ’새로운 신화의 창조‘]라 할 수 있다. 문예사의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은 관습적으로 옳으나, ’인류의 역사는 되돌아간다.‘라는 말이 정확히 옳다. 인류전체의 궁극적인 창조성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유일신화를 그리워하여, 궁극적으로 정신과 물상이 하나가 되는 덩어리를 지향해 왔기 때문이리라.
인류가 심과 물의 혼연일체를 염원하는 그 덩어리는, 한계의 구심력과 가능성의 원심력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인류가 일컫는 우주의 역사는 일종의 '간극성의 대역'이라고 할 수 있으나, 원래 우주 전체에는 역사가 없다. 우주 내적인 시간성의 편린들만이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결국, 작고 연약한 인류의 자성적 정신사의 관점에서, 삼라만상은 근원을 그리워하며, 근원을 향한 '우주의 연꽃'은 겁의 시간성 속에서 정중동으로 피어나고 있다. 허니, 우리 인류의 정신성은 '종합문예의 덩어리'를 추구하며 그런 정신적 자세를 지향하고 자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결국 그러한 태도가 인류전체의 이상과 믿음과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 덩어리는 다름아닌 '진선미의 합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전후의 모든 단계에서는 몽상과 기상[Conceit]과 항변과 일탈과 회고와 부정 등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수시로 재발할 것이나 이러한 것들은 예외없이 비본질적이어서 앞서 말한 궁극적인 덩어리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2007년 2월 27일 0:36 ;대치동 Blue Sky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