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상록·에쎄이

고독에 대하여-2 (On Solitude-2)-20100524 수정

imaginerNZ 2010. 5. 24. 14:47

 

 

 

카이코우라 해변

(Kaikoura Beach In South Island of New Zealand) 

 

 

 

 

고독에 대하여-2 (On Solitude-2)

수정 20100524 -KBH에게 헌정함

 

 

고독 속에서 무엇을 이루려는 의지가 생기거나

역으로 그 의지를 지우거나

마음을 송두리째 비운 듯한 상태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일생의 고독 속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거나 안정하거나

일생을 이미 지나 잊은 듯이

있는 그 자리에서 우주자연에 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독의 주위에서 하늘거리는 고독의 베일에

잠시 혹은 일생 동안 에워싸이는 것과 같다.

 

삶속에 삶에서는

어떤 극미한 열의의 바이러스도 사람을 열병에 들게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고독은 고독의 베일이다.

그러나 고독이 쓰고 있는 베일은 고독이 아니며 고독에는 베일이 없다.

일체화의 직관만이 사람을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한다.

그것을 신성하다고 간주하거나 선언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적 일생의 몫이다.

 

사람은

더 사색적일수록

더 활동적일수록

더 생생한 느낌을 가질수록

 

더 과학적일수록

더 예술적일수록

더 구도적일수록

그만큼 덜 고독하다.

 

원래 사람은 종국적으로 고독을 지향하며 구원하거나 혹은  절대고독하지 않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는 길(道) 위와 주위에 고독은 공기처럼 남김없이 배어 있다.

다만 어느 누구의 예외도 없이 삶의 경로를 밟아 다져 나가며

마침내 처음과 끝이 없는 시간성인 하나의 순간 속에 홀로 절절함마저 지나

우주가 합일하는 투명한 깨달음에 잠길 수는 있다.

 

고독한 분위기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만유에 대한 직관만이

사람을 사람대로 대자연에 잠기게 한다.

 

시계는 발명되는 순간부터 고장이 나 있고

생물은 고독에 목말라 있고

생이 느끼는 사물은 고독에 젖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만상은 고독에 마르거나 혹은 고독에 젖어 있으면서

고독한 순간의 불가측히 거대한 나래에 한데 깃들어 있다.

 

사람이 바라보는

야생의 초목이나 동물은

견자의 눈매 속에 명멸하는 의식과 박동하는 심장보다 조금 더 고독하고

시냇물이나 바위며,

수없이 이고 지는 구름과 아득한 지평의 들녁,

웅장한 설산맥과 망망한 바다는,

그보다 더 고독하고

그리고 광대무변히 펼쳐져 있는 별밤하늘은 

더없이 고독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의 견자들이여, 

우주자연의 망망함이 우리 각자의 심맥에 한없이 스며드는

저홀로 고독으로부터 벗어나

일생에 머무르지 않는 길(道)을 오로지 그리고 묵연히 계속 걸어가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흙이 되고

모든 것을 적시는 물이 되어 흐르다,

마침내 산상의 적설로 멎거나

뭇 영혼에 단비 되어 내리기까지.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고독하나 절대고독하지 않고

완성하려 하나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에는 완성이 없고

사람은 생사를 떠나 자연의 영원한 일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속한다.

 

모든 인간적 신앙의 진정성은

고독의 오로라 안에 머물며 마음의 별밭을 홀로 갈고 난 후에 

그 다음으로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이는 일에 해당한다.

사람의 신앙이 짧은 삶에 조급하여

단 한 번뿐인 개체의 일생 중에

먼저 거두어 들이고 나서 씨를 뿌리려 하는 역천의 신앙이 되지 않기를 인류의 영혼에 기도한다.

(200809050146 엘리엇 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