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대하여-2
여기에서 나는
인류의 처음이 아니라
누구든지 깨닫고자 하는 인류의 마지막 상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지금 나는
생명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점 이외에
인원성에서 멀어지며 인류와 무관한 상태에 서서히 그리고 최대한 진입하고 있다
이점이 비인류적, 친우주적 공정성을 담보해 줄 것으로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시는 한 장의 휴지조각에 불과하며
모든 책은 한 권의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인류에게 궁극적인 지혜(sophia)는 없다
역사적 삶에는 지혜가 없다
도에도 지혜는 없다
오히려 지혜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나 삶 이후의 상태,
-삶의 시공을 에워싸고 있는 막역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막역한 상태인 우주의 시공태와 교감하는 안테나의 기능적 형상을 지혜라고 사람들은 여겨왔다
그런데 지혜는 하나의 궁극적 대상과의 혼몰상태를 이름이지 매개하거나 적파하는 소통수단이 아니며
천부적 재능이나 땀과 인고의 결과로 주어지는 삶의 어떤 현상이나 상태도 아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지혜의 속은 거의 비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우주의 시공처럼
삶에서 얻는 지혜는 삶에
구도에서 얻는 지혜는 구도에 각기 머문다
그것이 참삶과 행복감을 얻는 수단으로 인류사에 자리매김한 지혜의 자기발견적 속성이다
궁극적 의미에서 인류가 추구하는 지혜라는 것은
우주자연의 조화적 질서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류염원이 완성을 꿈꾸는 가상현실 속에 있는 불멸의 세계지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까지 인류정신사의 혼돈상을 최종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와 소망에서 비롯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상태는 인류가 도달하거나 진입할 수 없는 비이상향이라는 점이다
인류가 이상향을 염원하고 거기에 다다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꿈결 속의 진풍경 같은 것이다.
인류의 사실적 이상향이라는 처소는 영원히 우리가 일컫는 외계, 즉 우주 그 자체일 터이다.
살아 있는 동안 생명체의 한 종으로 인간은 지혜롭지 못하며
태어나기 이전이나 삶 이후에 원소상태로 무한히 이합집산하며
어떤 생명의 잠재태로 남아 있는 한, 그 상태 역시 지혜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상태보다 인류가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결집과 해체를 무한반복하는 그런 원소화 상태의 순환의 잔영과 같은 진선미의 합일감을
뭇생명의 잠재태로서 살아 생전에 자각하는 것이 인칭, '도 혹은 지혜'라 상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류전체-통시공적 전인류체-가 득하고자 하는 지혜가 지혜롭지 못한 이유는
인류의 정신은 만유와 정신의 관계성 속에서
오직 하나의 지혜라는 것을 구하고자 하는 일체지향적 의욕에서 지혜라는 초탈적 공감의 범주를 구성해 냈고
거기에 구원적 보편성이 더해져 끝없이 뻗어 있는 우주의 공동이라는 현재태의 미래상 속에서
인류를 향해 다가오는 구원의 자화상을 대상적으로 발견하려는 역사적 믿음이
자연발생하여 전파되고 확대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지혜의 추구는 종교를 배태하게 되었다.
그것이 인류심이 품는 지혜의 속성이며
인류의 지혜지향적인 성향은
인류정신의 기저에 망각될 수 없는 유산으로
대대손손 골고루
때로 촉촉히 젖어 있거나, 드물게 때로는 담담히 배어 있다
인류에게 지혜는
파계하지 않는 승려처럼 그 자체의 영역 안에 관성적으로 머물며
우주는 다만 이루헤아릴 바 없다.
(200908020248 엘리엇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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