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고원
도(道)에 대하여[On 'Do']
마음의 바탕이 도(道) 안에 들면
사람은 삶을 단지 어떤 한 현상으로 여기게 된다.
더 이상 무엇을 추구하거나 지향하지 않아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모든 것에는 원래 경계가 없다.
도(道)는 사람을 안팎의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다.
도(道)에 속하는 어떤 진이나 선이나 미도 마찬가지다.
도(道) 안에 들면
더 이상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더 이상 꿈에 마취되지 않으며
더 이상 고독해하지 않으며
더 이상 멀리 그리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구도(求道)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라 하기 전에
'인간은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희구하는 유일한 동물이다.'라 하는 게 적절하다.
최선의 삶은
문명을 지나 생명의 근원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공경지심이자 생명의 궁극적인 도덕성이다.
돌연히 과진화의 샛길로 접어든 이후로 인간이 마음상태를 평정으로 이끌기는 지난하다.
인간의 마음은 과진화를 강변하며 권력의지를 끊임없이 유지하고 강화하고 방어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수행은 마음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권력을 내놓기를 요구하는 일종의 고요한 투쟁이다.
아무렇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면 더 이상 깨달음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바꿔 말해,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 상태로 마음의 자연을 회복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종교적 차원에서 그런 본원적 순화의 과정은 '신성에로의 귀의'에 해당한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수행이 진리 안에 드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도(道)를 깨닫는 데에는 어떤 생래적이면서 특수한 경우도 존재하며
깨달음에 도달하는 데에는 모든 방법이 가능하다.
수행의 시기나 장소가 아니라
도(道) 자체가 완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20080207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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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 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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