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섣불리 창작에 뛰어들도록 교육하면 안 되는 이유
청소년들이 적확한 논리보다 어줍짢은 창작을 먼저 배우고 익히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문학교사들이 저지르는 지적 죄악이다.
그것은 재능의 싹인 학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예의 미로에 갇히는 강박적인 어리석음을 가르치는 행위로
그것은 삶이라는 미명하에 수정할 수 없는 자구에 가득찬 낡은 윤리의 경전을 전수하려는 것과 유사하다.
재능 있는 청소년들에게 창작을 먼저 가르쳐서는 안 된다.
창작 이전에 다양한 체험
-철학(윤리보다 먼저 논리)과 인문학 분야(필수)와
자연과학분야의 근간이 되는 서적들을 섭렵한 이후에
본격적인 예술방면(음악,미술...)의 직간접 경험-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미성숙 단계에서 음악 이외에 여타 예술분야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정신이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어 고착화되기 쉽기에 하는 말이다.
문학의 선생인 그대가
청소년기에 꿈꾸는 듯한 마음에 창작을 먼저 익혔고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논리교육을 먼저 받지 않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학생들에게 전철을 답습하는 교육을 하지 않기 바란다.
어떤 신도 부모도 그대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재능을 미리 시들게 하거나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재능의 싹이 일생을 그리고 문예적으로 영원히 병약하게 살도록 미리 누렇게 뜨게 하고 있다면
지금 그만두고 체계적으로 인문학과 논리의 서를 구해 읽고 느끼고 깨닫기까지
선생인 자신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도 일생이 모자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창작에 들기 이전에 논리의 골격을 갖춘 이후에만 문예의 재능은 식생처럼 절로 이룬다.
화농에 부풀어 오르다 오르다 못내 터져 흘러나오는 진물은 진정한 시가 아니다.
한 나라말을 쓰는 동일언어권에서 이런 현상이 관습처럼 유행하는 것은 그 언어의 더할나위없는 불행이다.
본질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편협하고 낙후한 정신분야는 국어국문학이다.
누구든지 생각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유는 있다.
(200903191500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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