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한 수행자의 삶
» 있는 그대로의 노스님 근영
△ 경전을 읽으시는 스님
롭쌍 왕뒤 티벳 망명 노스님. 나이 열세 살 되던 해에 라싸 근교 뀐뒬링 곰빠란 절에 보내졌단다. 올 연세는 78세이며, 평생 학고방 같은 조그만 단칸방 안에서 지금도 매일 변함없는 일과 속에, 가진 게 거의 없는 수행자의 삶이다. 어떤 특별한 존함이나 이력도 없고 그저 드러나지 않는 자기만의 조용한 비구 삶일 뿐이다. 늘 부산하고 예식이나 의식이 많은 사원을 떠나 그 단칸방 한자리에서 이렇게 혼자 지낸 지가 26년이란다.
역사적으로 종교의 제일 부끄러운 모순이란 게 우선 제일 많은 사람을 죽여 왔다는 것 일 게다. 어느 종교나 이웃 사랑과 관용, 자비의 실천을 호소하는데도 그 이면에는 무서운 폭력, 자기 종교를 위한다는 도그마를 앞세워 수많은 사람을 죽여 온 역사라는 게 가끔 종교의 회의와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번은 내 방에 찾아온 한 나이든 낯선 여행자의 말이 잊을 수가 없고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시님요, 막말로 요즘 성직자가 정말 성직자 맞습니까? 방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정말 우리 보담 몇 배 고급스런 물건들이 꽉 차 있고요. 막말로 우리가 있는 마누라 하나 없다는 거 빼곤 있을 거 다 있던디요. 또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최고급품이구요.”
이 노스님과 인연이 시작된 것은 어디서 들으신 건지 약을 누구에게나 준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신 때부터다. 무릎이 시어간다며 영양제를 받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필자를 찾아오신다. 벌써 십 육칠년이 넘는다. 잡수는 게 너무 간소하다. 거기에 오후불식(정오가 지나서는 다음날 아침까지 일체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 티벳 사람이라면 불문율로 누구나 먹는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 순수 채식가이다.
일과는 새벽 세 네 시가 아닌 두시부터 명상과 간경, 그리고 절로 시작된다. 당신 방 정말 좁은 방에서 매일 삼백배의 절을 한다. 소박한 티벳식 짬빠(볶은 보릿가루)와 버터차로 아침을 마친 뒤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왕궁과 절 주위를 참배하는 티벳 사람만의 불교 신앙의식인 꼬라 길을 매일 새벽에 세 바퀴, 낮에 네 바퀴 씩 돈다. 한 바퀴 도는데 얼추 반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점심 이후는 당신 개인 일과로서 난민들 가정을 방문하는 게 많다. 어느 날부터 이 스님의 손이 약손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아픈 부위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신통하게도 아픈 곳이 낫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특별한 비밀 수행을 해 온 어떤 비법일까? 아니다. 그 어떤 비법이랄 건 하나도 없다. 한 비구승의 맑고 맑은 영혼의 에너지일 것이다. 이 노스님이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여기를 떠나 성도지 부다가야에 내려가신다. 노구에 추위도 피할 겸 바로 당신 혼자 정해 놓고 연연히 해가는 수행을 하러 가는 것이다. 티벳 절을 매번 이십만 배 씩를 한다. 백일을 정하고선 그 노구에 하루 이천 배 씩 절을 올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집에서 매일 삼백 배씩 하는 절 빼고, 부다가야에서만 절하신 게 올해로써 육백만 배를 마쳤단다. 놀랍지 않은가! 흔히들 티벳 전통대로 어떤 수행 전에 십만 배를 기초수행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
△방안의 시멘트 벽 선반 위의 불단.
지난 겨울 칼라차크라 행사에 참석, 부다가야 대탑을 참배 할 때 저쪽 한쪽 구석에서 절을 올리는 노스님을 멀찌기 좀 떨어진 곳에서 보고는 참으로 행복했다. 그 절하는 모습이 사람이 절을 하는 게 아닌 어느 하늘 사람이 지금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유연한 몸매며 절 한 배 한 배에서 가냘픈 노비구의 향이 베어 나오는 것이었다. 아, 바로 저 에너지, 저 청정무구한 비구의 맑은 영혼이 병든 중생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구나!
당신이 사시는 방을 한 번 보자. 컴컴하고 좀 퀴퀴한 버터 냄새가 베어나는 방의 구조라니!! 침대 하나에 취사도구와 조그만 불단, 그리고 절 할 수 있는 공간이 전부다. 출입문 하나에 벽엔 창문도 없다. 우리나라 식 평수로 말하면 네다섯 평이나 될까. 이 방안에서 26년이라니 숙연해진다. 가끔 필자를 찾는 손님 중에 의식을 갖춘 분이라 판단되면 그 노스님께 인사차 찾아간다. 쉽게는 가지 않는바 노스님의 수행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운이 좋은 몇몇은 일반신도였다. 놀랍게도 결과는 하나다. 스님이건 누구건 그 스님을 보고 그 방을 보고는 그냥 그 자리에서 펑펑 운다. 어떤 이는 대성통곡이다. 왜 우냐고 물으면 대답도 똑같다. 말로 할 수없는 뭔가가 그리 울음을 나오게 한단다.
이 시대에 우리 출가자나 성직자라고 말 할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도자의 옷만 걸쳤다고 그저 성직자일까? 신전에 사원에 산다고 성직자로 존경 받아야 하는가? 그 휘황찬란한 신전이나 사원도 문제다. 그 어느 성자가 그 어느 종교 창시자인 교조가 그런 호강과 대접을 받고 살았던가? 막말로 부처나 예수가 그런 집 그런 풍요를 누려왔던가?
요즘엔 신전이나 사원의 크기로 성직자의 위상을 잣대 매김 질 하는가 보다. 어디서나 큰 사찰과 대형 교회를 짓는데 놀랍게도 옆에는 버젓이 이미 큰 종교건물이 있는데도, 그 아담한 건물 죄다 뜯어내고 크게 만 크게 만 새로 또 짓는 일의 반복이다. 쉽게 말해 새 포장지만 자꾸 바꿔 나가는 꼴이다. 막말로 신이 된 교조나 부처가 그런 큰 신전 사원에만 있을까? 이젠 이 열린 세상에서 그런 비린내 나는 장사속의 대형화로 더 이상 민중을 속일 수가 없는 시대이다. 본래 교조의 사상을 행할 때, 사랑과 자비의 실천만이 이 세상에 길이 남을 것이다.
“대형화되는 사찰과 교회 반성해야…사랑과 자비 실천이 우선”
또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 헐벗은 민중에게 따뜻한 진리로 남을 것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성직자들은 사회적 명사나 가진 자들이나 만나준다니 어디 이게 성직자인가? 외려 자기 일 성실히 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중이 바로 성직자 보다 낫다. 허긴 요즘 성직자들의 위상이란 민중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니.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나 자기희생이 베인 수행과 맑은 삶은 고사하고 이젠 선거판까지 뛰어든다니. 그래도 이 시대에 어느 목사님이 쓴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책이 생각난다.
△있는 그대로의 노스님 근영
절집에서 새벽 예불 중에 늘 축원을 올리는 대목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즉,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모두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의 괴로움을 여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모두 해탈을 얻게 하소서.”라는 의미의 기도축원문이다. 필자는 바로 이 문구가 이 소박한 스님의 일생 수행 자태에 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나 이 스님을 보는 자체에서 큰 기쁨과 나의 본래 숨어있는 착함을 돌이켜보는 계기를 주니까 말이다. 흔히들 요즘 잘 챙겨 입으며 잘 섭생 한 건지 기름기 흐르는 우람한 성직자의 모습에서 존경심이 우러나거나 환희심을 받기는커녕 외려 짜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말을 듣는다.
어쩌다 한국을 들어가서 대형화 되어가는 종교 건물을 볼 때마다에 바로 이 이름 없는 롭쌍 왕뒤 노스님의 거처와 삶이 생각난다. 이 글을 쓰고서 사진을 촬영하고자 당신 거처인 방에 들어가 불단과 스님 그대로의 간경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어떤 꾸밈없이 당신 방 있는 그대로 보인다.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하시는 말씀이란, 대탑에서 육백만 배를 마친 마지막 회향일 날 밤에 놀랍게도 부처님을 뵙는 상서로운 꿈을 가졌는데 올핸 꼭 고향땅과 자기 출가한 절 곰빠에 다녀 올 수 있을 거라며 기뻐하신다. 망명 이후 아직 한 번도 티벳에 가본 적이 없단다. (현재 티벳 국경은 분신사태로 꽁꽁 묶어놔 티벳 사람 누구 하나도 통행이 금지 되어있다.)
이 글을 마치며 필자도 이 노스님처럼 평생 청정하게 수행하며, 겸손과 침묵으로 맑은 영혼을 갖추고자 노력할 것이다.
2012년 4월 히말라야 맑은 봄기운 속에서, 비구 청 전 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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