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에게 쓰는 편지-1
(헤엄을 치고 있는 한 마리 물고기는 행복하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얻으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잃고 있다고
우리 마음의 눈빛은 말한다.
한 마디 말을 하거나
한 편의 글을 쓰거나
다른 어떤 것을 하거나
혹은 기도를 할 때.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인공의 묘비나 봉분에 서린 생의 추억이 아니라
자연에 잠겨 현재에 따듯이 고동하는 심장과 생생한 눈빛에
무언가를 애틋이 사랑하고 아련히 그리워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면서 나뉘어지는 갈래의 길을 각자 걸어갈 때
누군가와 함께 걸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노라 느낄 수도 있다.
함께 살며 생의 길을 나아가는 것은
서로에게 생의 위안과 보람을 준다.
허나
행복의 처음에서 이어지는 과정과 그 끝은
언제나 자신의 길을 홀로 가는 데 있다.
우리는 홀로 태어나 한 번을 살며 홀로 떠나간다
이것이 생의 바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성취와 어떤 믿음도
생의 시간 속에 가능성을 얻으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잃고 있다.
시공이 하나로 어우러진 자연 안에서
자연이 하나이듯 우리 각자의 자아도 하나이니
우리가 커다란 하나됨에 이르르기 전에 둘 혹은 그 이상을 선택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소중하다 여기는 모든 것을 떠났을 때에도
혼자서 번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홀로 구도의 길을 갈 때
결국은 모든 사람이 살아온 나날들의 추억을
마음에 간직하거나 혹은 마음에서 비우려 하며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얼마나 먼저 깨닫게 되는가의 차이가 남겨진다.
진정한 구도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처음과 끝이 없이 흐르는 시간성의 바탕을 엮은 삼원색실이며
대자연이 하나의 온전한 공간이며
이러한 시간성과 공간성이 어우러져 생생하게 우리를 감싸안고 있다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히 깨달아 그에 눈을 뜬다.
우리 모두가 예외없이
하나의 온전한 대자연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서로를 타생화하면서 일어나는 온갖 세상사의 갈등과 질곡은 해소될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머리나 팔 혹은 다리를,
혹은 머리가 팔을, 팔이 다리를,
혹은 혀가 위를, 심장이 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치 때문이다.
한 마리의 물고기가 펄떡일 때
그 물고기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 머리일 수도 있고 꼬리 지느러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라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자연 속에 하나의 머리 혹은 꼬리라면
그 물고기가 같은 자연의 하나의 머리 또는 꼬리라는 생각을 해 보라.
무릇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이와같이 여기고 소중히 대하여 이해하고 양보를 하면
감정과 욕구, 이익과 애증을 앞세워 타인을 대하는 일과
그 결과의 일파만파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런 이치를 헤아리고 구도하는 이는
이승에 흐르는 시간 속에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
무엇에 관해 사고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와중에
심지어 믿고 경배하며 기도하는 중에도
가능성을 얻으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잃고 있다는 점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200711230223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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