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언어·인류학 관련

[스크랩] `불확정성의 원리`, 그리고 관계의 철학

imaginerNZ 2007. 11. 9. 23:51

 

 

 

 

‘철학적 사유’ 통한 과학혁명



현대물리학은 관계성을 중시한다.

자연은 나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나와 관계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이 철학과 별개로 발전하는 듯 보였던 16~19세기 과학계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20세기 현대물리학을 열어젖힌 그의 양자론은, 낡은 고대철학을 현대과학에 도입해 빚어낸 것이다. 사진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모습. 출처:<하이젠베르크>(한길로로로 펴냄)

김용석 고전으로 철학하기

 

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과 철학’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저서 '물리학과 철학(1958년)'은 제목부터 부담을 줄 지 모른다. 얼른 보아 ‘학(學)’ 자가 붙은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핵심적인 것은 물리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혹자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렇게 성급한 사람은 ‘핵심’이 무엇인지 볼 줄 모른다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책제목에서 핵심은 바로 제목 한 가운데에 있는 ‘과’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형식상으로 ‘과’는 둘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접속 조사이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하이젠베르크의 철학 정신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말이다. 그 어느 과학자보다 하이젠베르크에 있어서는 ‘자연과학의 철학적 함의(含意)’가 중요하다. 그 자신이 말하듯이 “현대물리학이 갖는 의미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실체와 같은 철학적 기초 개념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현대물리학이 “기술적인 언어로만 논의”될 수는 없고, “그 철학적 함의를 탐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이젠베르크의 철학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관계의 철학’이다.
그는 이 세상 만물에서 관계를 발견해 가는 것으로 과학적 탐구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는 학문적 기초를 닦을 기회를 가졌다. 가정의 교육적 분위기 속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원전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를 접하게 된 것은 그의 과학적 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은 그가 마음 속 깊이 품고 있었던 철학적 세계관의 과학적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철학과 물리학이 상호 연관성을 갖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발전은 그 ‘독립적 권위’를 확고히 해주는 듯 했다.
20세기 초에 하이젠베르크는 과학 이론이 물리적 가정과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가정에 의존한다는 것을 분명히 일깨워줬다.
결과적으로 현대 과학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 정신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현대 과학의 진정한 수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하이젠베르크에게 고대철학과 현대물리학 사이의 연관은 매우 중요하며 이 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주제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의 개념을 에너지의 의미로 해석할 때, 현대물리학의 관점은 고대의 자연철학 사상과 매우 근접해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능태의 개념’을 통해서 양자역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제시했다는 점이다(이런 점에서 특히 9장과 10장의 독서는 흥미롭다). 다시 말해, 그는 양자론을 통해서 낡은 고대의 개념을 새로운 현대 과학에 도입한 것이다. 어쩌면 하이젠베르크는 철학과 과학의 탐구를 통해 고대와 현대를 가장 효과 있고 멋지게 연계해준 학자일지 모른다. 이상은 양자론과 불확정성 원리 탄생의 학제적(學際的)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론의 내용에서 ‘관계성’이 핵심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양자론이 등장하면서, 고전물리학의 신념이었던 실체성의 개념은 약화되고 대상과 관측자 사이의 관계성이 부상했다. 특히 원자와 같이 미시세계를 탐구할 때는 관찰자의 행위 자체가 관찰 대상을 변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찰 행위 자체가 관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고전물리학의 개념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고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에 대한 하이젠베르크 자신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현대물리학은 주관과 객관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 분리는 과거 과학방법론의 중요한 태도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에서는 엄격한 분리가 있을 수 없으며 양쪽의 상호 관계성을 중시하고 있다…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질문방식 속에 나타난 자연이다…자연은 우리와 떨어져서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존재의 드라마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배우도 되고 관객도 되는 것이다. 자연은 나와 관계할 때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불확정성원리 [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

양자역학에서의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입자의 에너지와 그 에너지가 지속되는 시간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라고도 한다.
고전역학에 의하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전자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항상 동시 측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물리량의 측정값이 불확정하다는 것은 측정기술이 불충분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입자의 위치 x와 운동량 p는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고, 쌍방의 불확정성 Δx와 Δp가 ΔxΔp≥h/2π(h는 플랑크상수)에 의해 서로 제약되어,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진다. 이러한 견해는 1927년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이 원리의 기본 골격은 입자성을 특징짓는 위치의 확정성과 파동성을 특징짓는 파장의 확정성은 서로 제약을 받고 입자성과 파동성이 서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느 범위 내에서는 입자의 측면에서 보고, 다른 범위 내에서는 파동의 측면에서 본다. 여러
물리적 양을 측정한 결과가 반드시 확정된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여러 값이 각각 정해진 확률을 가지고 얻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적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에는 불확정성원리가 성립한다.

이 원리는 입자의 에너지 E와 그 에너지가 측정되는 상태의 계속시간 Δt에 관해서도 성립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려고 하면 에너지의 불확정성 ΔE가 증가하여 ΔtΔE≥h/2π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이와 같이 서로 상대방의 측정값을 제약하는 물리량은 양자역학의 입장에서 볼때 보편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자역학은 상보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며, 고전역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태개념의 규정과 시간적 변화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31189.html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ErgoSum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