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라는 말은 이상한 말이다
[Sesu(Washing Face) Is a Strange Word]
'세수(洗手)'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 보면 '손을 씻는다' 또는 더 나아가서 '손으로 씻는다(?)'는 뜻이다. 말뜻을 자세히 새겨보면 어리둥절하다. 우리가 세수를 할 때 손으로 손을 씻기도 하나 동시에 양손은 얼굴을 씻는 도구역할을 한다. 세수를 할 때 손을 씻는 게 주일까? 혹은 얼굴을 씻는 게 주일까? 아마 둘다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모은 양손에 물을 담아 얼굴을 씻는 것이 주동작임은 분명하다. 덧붙여 말하면, 과거에 대다수 일반사람들이 세수라는 말을 선호하여 사용하는 현상이 어쩌면 세수(洗手)를 세수(洗水)로 여겨 널리 썼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세수(洗水)의 경우는 수세(水洗;물로 씻는 것)라는 말이 타당하다. 이전 시대에 한문에 박식하지 않았던 일반사람들이 '세수'의 '수'를 쉬우면서 이해가능한 '물'로 보통 이해했기에 '물로 씻는다'는 의미의 세수(洗水)라는 말이 대다수의 일반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세면(洗面)'이나 '세안(洗顔)'으로 하는 건 어떨까? 이 경우에 쓰이는 글자인 '面(면)'과 '顔(안)'은 우리말의 '얼굴'에 해당하는 한자다. 그러나 세면이니 세안이니 하는 단어는 한문투라 의미가 다소 딱딱하고 더구나 '세면'이라고 하면 욕실에 있는 하얀 세면대의 이미지가 강하게 연상되고 '세안'이라고 하면 튜브나 플래스틱통에 들어 있는 미용을 위한 세안크림을 바르는 여성의 모습이 연상되어 일반적인 '세수'의 의미로 통용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렇다고 '세수면'이라 하면 수면(잠)이라는 느낌이 들어 어색하고 어쩌면 날마다 세수를 하지 않는 강아지가 듣고 웃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본적인 욕구에 항시 목마른 강아지들이 듣기에 이런 말고민은 첫째로 어리석기 짝이 없고, 둘째로 딴 세상의 한가한 말놀음 같을 수도 있다.
세수를 얼굴을 씻는 행위에 걸맞게 무엇이라 바꿔 부르면 좋을까?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그 숱한 줄임말 중에 '쌩얼'이니 '얼짱'이니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얼굴을 '얼'이라 줄여 부르고 있다. 그러면 '씻얼'이나 얼씻'이란 말은 생뚱맞고 조합미와 마감성이 부족하여 웬지 듣기에 어색하다. 그렇다고 '얼씻기'라고 하면 마치 '혼을 씻어내기'처럼 들린다. 세수는 하루에 한 번씩 하는 '겉씻기'에 해당하는데,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하는 '얼씻기'는 천부당 만부당하다. 그것은 마치 누렁소의 잔등에 붙어 있는 파리를 소라고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세수를 '세얼'이나 '얼세'라고 하면 어떨까? 이 말은 한자와 우리말의 혼사에 해당하는 말이나 처음 듣는 말이라 어색하고 낯설다는 느낌을 자연스레 스스로 해소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두 낱말 중에 '세얼'이라는 말에는 느낌이 웬만큼 동한다. '생얼' 혹은'쌩얼'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쓰고 있는 신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될 즈음이면 '생얼'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통용될 수도 있고 그러면 '세얼'이라는 말도 덩달아 뜨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아무튼 '세수'가 대중적인 지위를 계속 누릴지 행여 '세얼'이나 그외 다른 발명어가 그 지위를 접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이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세월이 약이다.'는 말의 실현성에 역시나 기대어 본다.
만일 위에 제시한 어설픈 말들도 듣기에 좀 그렇다고 여겨지면 아무런 뇌작용의 여과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곧바로 세수행위를 떠오르게 하는 말인 '푸푸(fufu)'로 정하면 안 될까? 그런데 이 말은 유아의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말이다. 만일 어른들이 이 말을 무단점유하여 사용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성인용 악몽에 가까운 사태가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푸푸'라는 말에 대해 배타적 언어사용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초조숙한 유아들이 들고 일어설 수도 있다. 유아들이 이메일을 서로 주고 받으며 일시에 전국적인 시위를 약속하는 일이 생긴다고 해보자. 각각의 유치원 앞에 나란히 서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항의동요를 부르거나(?), 수업시간에 딴청을 피우고 생떼를 쓰며 태업을 하거나(?), 또는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진단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처럼 일부러 아프다고 마구 우는 등의 칭병을 하거나(?), 따분하고 틀에 박힌 어른들이 만들어낸 교육적인 행사나 수박 겉핥기식 견학 등을 거부하거나(?), 엄마 아빠의 피곤을 가중시키려고 수시로 반찬투정이나 기타 온갖 투정을 하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적어도 그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현재로만 봐도 0%는 아니다. 만일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에 몰두하고 있는 어른들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사태를 수습하는 길을 택해 백기항복을 하지 않을까? 아마도 한국에서 철 없는 자식을 이길, 더구나 요즘 같아서는 배겨낼 부모, 특히나 엄마는 거의 없을 듯하다. 만일 '푸푸'의 사용을 정부가 포고령으로 강제한다면 전국의 유아들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까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나서서 반대를 할 듯하다. 이제 '푸푸'라는 말은 일단 원천적으로 거의 99.999......% 어른들에게는 사용금지라고 여기자. 다만 '푸푸'라는 말이 인공적인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자연 그대로의 낱말이고 특히나 외국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세계공용어의 가능성은 높은 점수를 줄 일이다.
그러면, 세수 대신에 과연 그밖에 어떤 말을 쓰면 좋을까? 이 한가하게 느껴지는 고민을 해소할 절묘한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는 걸까? 옳거니 하고 무릎을 탁하고 칠 정도로 기가 막히게 하면서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적당한 말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아예 만드는 건 어떨까? 아마도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단어는 시작(詩作) 수준의 제작에서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세수'라는 말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최후의 현대적 해결방식인 다수결을 통해 결론을 유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의 창의적 여론을 중시하여 '세수'를 대체할 수 있는 절묘한 단어를 적지않은 상금과 협찬물품까지 걸고 현상공모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응모된 단어들 중에 전화여론조사를 통해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수여한다. 그리고 나서 메달을 딴 이 세 어휘를 대통령 선거하듯이 국민투표에 부쳐 상위에 당선된 단어를 표준어휘로 채택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첫째로,잘못 케케묵은 단어 하나가 오류와 시대착오를 벗어나 신시대에 맞는 새로운 단어로 확실하게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단어 하나를 바꾸는데 어른들 사이에 불필요한 정치적 선동에 의한 국론분열은 없을 것이니 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일부 쇄국적인 국어학자들이 모국어의 주인인 이땅의 일반사람들을 도외시한 채, 저희들끼리 특정학설의 우승을 위해 갑론을박하는 수고까지 덜 수 있을 것이니 국어학의 발전에도 보탬이 될 듯싶다. 요즘 일부 국어학자들이 한 나라의 언어에도 헌정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불문율이 있다는 점을 잊고 있는 듯하여 사족으로 붙여 하는 말이다.
(200805200514 완성 ;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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